오늘 병원에 다녀오면서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읽었습니다.

전부터 읽고 있지만 귀차니즘에 그대로 방치하였더니 아직도 다 읽지 못했습니다.

 

왕복 3시간 가량을 걸리는 곳이라 그런지 생각외로 많은 부분을 읽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눈에 확 들어왔기에 간단히 적겠습니다.

 

 

실제로 두 개의 동전, 두 개의 책, 두 사람, 또는 그 밖의 두 개의 다른 사물이 아니라

2에 대해서 추상적으로 생각하려면 상당히 많은 사례가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의 사고에서 불필요한 특수성을 떼어낼 수 있게 되면

우리는 금세 2+2=4라는 일반원리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한 사례의 검토가 '전형적'인 것으로 파악되면

다른 사례들의 검토는 필요치 않게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적어도 어떤 경우에는 연역법이 새로운 지식을 준다는 것을 알고 있다.

2+2가 항상 4이고,

브라운과 존스는 두 사람이며, 로빈슨과 스미스가 두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우리는 브라운과 존스와 로빈슨과 스미스가 네 사람이라고 연역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전제에는 제시되지 않았던 전혀 새로운 지식이다.

'2+2=4'라는 일반명제는

결코 브라운과 존스와 로빈슨과 스미스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고,

또 그 특수한 전제들도 이러한 네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연역된 특수한 명제는 이러한 두 가지 사실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그러나 논리학 서적에 빠짐없이 나오는 연역법의 상투적인 예,

즉 '사람은 모두 죽는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는

앞의 예와 비교할 때 이 지식의 새로움은 확실성이 훨씬 덜하다.

이 경우 우리가 아무 의심 없이 실제로 알고 있는 것은,

A와 B와 C라는 어떤 사람들은 반드시 죽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것은 그들이 실제로 죽었기 때문이다.

 

만약 소크라테스가 그 중의 한 사람이라면,

'어쩌면' 소크라테스도 죽을 것이라는 결론을 얻기 위해

'사람은 모두 죽는다.'라고 말을 돌리는 것은 우매한 짓이다.

소크라테스가 앞의 귀납의 기초가 된 사람 중의 하나가 아닐 경우에도

역시 '사람은 모두 죽는다.'라는 일반명제에 의해 우회하기보다는

A, B, C라는 사람들로부터 소크라테스로 직접 논의를 전개하는 편이 보다 현명하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여건으로 보아 소크라테스가 죽는다는 개연성이

사람은 모두 즉는다는 개연성보다 크기 때문이다.

(사람은 모두 죽는다면 당연히 소크라테스도 죽지만,

소크라테스가 죽는다 하더라도

여기서 사람은 모두 죽는다는 귀결을 얻을 수는 없기에 이는 명백하다.)

 

따라서 우리는 '사람은 모두 죽는다.'는 명제를 가지고 연역법을 사용하는 것보다는,

순수하게 귀납적으로 논의를 전개해나갈 때

더욱 확실하게 소크라테스가 죽는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

 

이로써 '2+2=4'라는 선척적으로 인식되는 일반명제와

'사람은 모두 죽는다.'는 경험적 일반화의 차이가 명백해진다.

전자의 경우에 있어 연역법은 정당한 논의의 방식이고,

후자의 경우에 있어 귀납법은 항상 이론적으로 바람직하므로

우리가 얻어낸 결론의 진리성에 보다 큰 신뢰를 부여한다.

경험적 일반화는 모두 개개의 사례들보다 불확실한 것이기 때문이다.

 

- 철학이란 무엇인가 83, 85, 86쪽

 

 

상당히 긴 글을 옮겨 적었네요.

사실 제가 이부분을 확실하게 이해하지 못해서 줄이지 못했습니다.

만약 어설프게 줄였다가는 오해가 발생할 수 있기에

차라리 필요한 부분을 그대로 옮겨적기로 했습니다.

 

 

삼단논법 중 유명한 것이죠.

소크라테스를 계속 죽이는 예..;;

전 이것에 대해 이렇게 배웠습니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

이것은 귀납법을 써서 나온 명제입니다.

이 명제를 가지고 연역을 하여 소크라테스가 죽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연역은 귀납으로 얻은 명제에서 출발합니다.

 

전 그렇게 배운 것에 따라 '연역보다 귀납이 앞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책에서는 그렇지 않은 연역이 있다는 것과

해당 예는 귀납을 쓰는 것이 더욱 현명하다는 점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에 대한 내용이 계속 이어지기에 끝까지 읽어야 정리가 될듯...^^

 

하지만 다행히도 좋은 글을 하나 찾았습니다.

'연역논증과 귀납논증에 대한 오해와 진실'

꼭 한 번 읽어보시길 권장합니다.

 

 

PS

책에 개연성(蓋然性)이라는 단어가 적혀있습니다.

하지만 해당 단어를 많이 들었을 뿐 정확한 뜻은 몰랐습니다.

옆의 한자가 적혀있지만 전혀 모르겠더군요.OTL...

 

그런데 위의 링크에는 괄호에 한자가 아닌 영어가 적혀있습니다.

'개연적(probably)'

그 글을 보자마자 '아... 그런 뜻이었구나.'라고 이해했습니다.

 

한글을 봐도 한자를 봐도 모르는 단어를 영어로 보자 알게 되다니....

그래서 국어도 영어로 배워야 하는군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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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니트 2008/01/30 2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연이 그런 경우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학술용어 중 일본을 통해 요상하게 바뀌어서 한국에 들어온 것들이 있어서 가끔 영어가 나은 경우가 있긴 합니다.

  2. ExLudo 2008/01/30 23: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반갑습니다. 철학책은 역시 어렵군요. :)

    제 글은 『리더를 위한 논리훈련』(송하석, 사피엔스)을 토대로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성향이 수험서에 가깝기는 하지만 교양 수준의 논리학을 개괄하는데 좋으니 관심있으시면 읽어보세요. :)

    인용하신 글은 표현 때문에 살짝 헷갈리기도 했어요. 보통은 연역이 전제가 결론을 내포하고 있고, 귀납이 전제에 나와있지 않은 새로운 사실을 결론으로 이끌어 낸다고 표현 하거든요. 착안점이 조금 다르네요. 덧붙이자면 위 귀납논증에서 "A. B, C는 모두 사람이다."라는 전제를 언급하지 않은 것도 헷갈림을 더하네요.

    필연, 개연에 대해서는 저는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쉽답니다. 必然 : 반드시 그러하다. 蓋然 : 대개 그러하다.

  3. NoSyu 2008/01/31 09: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니트/
    그래서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ㅜㅜ

  4. NoSyu 2008/01/31 09: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Ludo/
    반갑습니다.
    리더를 위한 논리훈련이라.. 재미있겠네요.^^

    네..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2+2=4와 사람 이야기에서 흥미로웠습니다.

    개연의 개를 잘 모르기에 사전을 찾아야하는 상태가....OTL.....
    한자 공부도 필수군요.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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