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CP 3장 주석 47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전략)
이런 생각은 14세기 프랑스 철학자 장 뷔리당(Jean Buridan)이 주석을 단,
아리스토텔레스의 천체론(De caelo)에서 처음 나왔다.
그 책에서 뷔리당은 똑같이 맛 좋은 소스를 뿌려 놓은 음식 두 가지를
완벽한 이성을 갖춘 개 앞에 놓아두면,
개는 무엇부터 먹어야 할지 정하지 못하여 끝내 굶어 죽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역주 : 이것은 흔히 뷔리당의 당나귀로 알려진 내용이다.)
The fundamental phenomenon here was originally observed
by the fourteenth-century French philosopher Jean Buridan
in his commentary on Aristotle's De caelo.
Buridan argued that a perfectly rational dog placed
between two equally attractive sources of food will starve to death,
because it is incapable of deciding which to go to first.
두 개의 먹이를 앞에 두고 어느 것을 먼저 먹을 것인가 고민하다가 굶어 죽는다라...
먼저 뷔리당의 당나귀라는 것을 검색해보았습니다.
양쪽에 동질(同質) ·동량(同量)의 먹이를 놓아두었을 때
당나귀가 어느 쪽 먹이를 먹을 것인가를 결정하지 못하여 아사(餓死)한다는 이야기.
프랑스의 스콜라 철학자 J.뷔리당이 하였다고 전해지는 유명한 말이다.
이 말 자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천체론(天體論)》에서 개를 예로 들어 인용되었으며
J.뷔리당은 이 책에 주해(註解)를 남겼다.
그의 저서에는 이 말이 들어 있지 않으나,
뷔리당의 자유의지론(自由意志論)을 야유하여 다른 사람들이 말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 말은 두 동등한 힘의 모티프 사이에서
의지(意志)의 행사(行使)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 사용된 말이다.
- 두산백과사전
천체론에서는 개가 쓰이는데 당나귀로 바뀌었군요.^^;;
여하튼 두 동등한 힘의 모티브 사이에서 의지의 행사를 할 수 없다라...
SICP에서 말한 동등한 중요도를 가지는 프로세스가
서로 CPU의 자원을 가지려고 할 때 deadlock이 나온다는 얘기와 통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산적인 컴퓨터 세상이 아닌 현실 세계에서는 어떠할까요?
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있나 싶어 살펴보았습니다.
그러자 재미있는 글이 몇 개 보였습니다.
그 중 두 개를 소개하겠습니다.
뷔리당은 정말이지 너무 배가 고팠다.
그의 허기는 무슨 일에든 완벽하게 합리적인 결정만 내리겠다는
그의 결심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문제는 냉장고의 음식이 다 떨어졌는데 그가 살고 있는 곳에서
정확히 똑같은 거리에 두 개의 똑같은 이마트 지점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로서는 둘 중 한 가게를 선택하고,
다른 한쪽에 가지 않을 충분한 이유가 없다.
그래서 어느 한 이마트를 선택할 합리적 근거를 찾아내지 못한 채
끊임없이 망설이는 상태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배에서 꾸르륵 소리가 나는 것을 더는 참을 수 없을 때
그는 한 가지 해결책을 찾아냈다고 생각했다.
굶어죽는 것이 분명 비합리적인 일이라면,
두 군데의 이마트 중 임의로 한 군데를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단순히 동전을 던지거나 자기 마음에 드는 쪽으로 방향을 잡기만 하면 될 것이다.
이것은 집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것보다는
분명히 더 합리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완벽하게 합리적인 결정만 내리겠다는
그 규칙을 무너뜨려야 하지 않을까?
이런 그의 생각은,
이를테면 동전 던지기와 같은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이
합리적인 일임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합리적인 비합리성’이란 것이 과연 합리적일까?
뷔리당은 치솟는 혈당 때문에 그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 뷔리당의 역설 -
'뷔리당의 당나귀'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뷔리당은 14세기의 프랑스 철학자입니다.
이 이야기는 그의 책 어디에서도 출처를 찾을 수 없지만
예로부터 '뷔리당의 당나귀'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예화입니다.
쫄쫄 굶어서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을 정도로 배고픈 당나귀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건초로 뒤덮인 산을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당나귀는 두 개의 산을 동시에 보고 말았습니다.
건초들은 양쪽이 똑같았습니다.
그래서 당나귀는 헷갈리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어느 산의 건초를 먼저 먹어야 할까?
어리석기 짝이 없는 헷갈림이지만 당나귀는 완전히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오른쪽 산부터 먹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오른쪽 산을 향해 두세 걸음 걸어가다보면 왠지 왼쪽 산이 더 맛있게 보입니다.
그래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고 가다보면
이번에는 오른쪽의 것이 더 맛있게 보이는 것입니다.
결국 다음날 아침,
당나귀는 건초로 뒤덮인 두 개의 산 중간에서 굶어 죽은 채 발견되었습니다.
이것이 '뷔리당의 당나귀'라는 이야기입니다.
정말 어리석지 않습니까?
앞서 저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헷갈림'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정말 당나귀가 바보였을까요?
그렇다면 이처럼 헷갈리고 미혹되어 살아가고 있는 인간은 어떨까요?
저는 전에 한 국립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쳤는데,
인생 상담을 하러 학생들이 이따금 찾아오곤 했습니다.
가장 많은 상담을 그 대학을 그만두고
다른 대학으로 편입하는 것이 나은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물었습니다.
"자네는 정말 이 대학을 그냥 계속 다녀도 좋고
다른 대학으로 옮겨가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는가?"
그러면 학생은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몇차례 확인해보지만 학생들의 대답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 이 주사위를 던져보게.
짝수가 나오면 이 학교에 남고, 홀수가 나오면 편입하기로 결정보세."
그러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화를 냅니다.
"저는 정말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장난치지 마십시오."
저는 장난치고 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쪽을 택해도 똑같은 것이라면
일찌감치 어느 쪽이든 결정해서 자신이 정한 길을 열심히 걸어가는 편이 더 낫다,
어는 쪽이라도 괜찮은데 괜히 미적미적 방황하고 있다면
그 방황은 헛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사위를 던져서라도 결단을 내리도록 권했던 것입니다.
어느 쪽도 괜찮다면 우연에 의해서라도 결정짓는 것이 현명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학생의 입장에서는
인생의 여러 가지 문제들에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것일까 저것일까 고민하며 방황할 때 인생의 지혜를 가진 사람이라면
딱 맞는 충고를 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성향이 매우 짙습니다.
교수나 전문가에게 상담하는 것도 그런 충고를 구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인생에 '정답'이 있을까요?
이것이냐, 저것이냐 두갈래 길을 걸어가보고 어느 쪽이 옳았는지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인생의 길은 자신이 지금 걸어가고 있는 길을 묵묵히 가는 것 외에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반야심경>에서는 "무지역무득無智亦無得"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득得'은 깨달음을 얻는 것을 말합니다.
지혜가 없으면 깨달음도 없다는 뜻입니다.
소승불교는 지혜나 깨달음에 집착하고 있지만
그렇게 되면 마치 인생에 '정답'이 있는 것처럼 착각해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반야심경>은 지혜나 깨달음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두 글 모두 재미있는 글입니다.^^
사실 두 번째 글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도 있지만,
뷔리당의 당나귀라는 것과 그 비합리성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글이라 생각합니다.
그러고보니 사랑 얘기에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누구와 사랑하고 결혼한다는 것.
그것은 다른 쪽으로 넘어갈 수 없는 그야말로 하나의 선택이 되겠지요.
(이혼과 재혼이 있지 않느냐라고 말씀하신다면... '평생'이라는 제한을 두겠습니다.
내세가 있지 않느냐라고 말씀하신다면... 없다고 하겠습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니 사람 사는 세상은
컴퓨터 세상처럼 중요도가 100% 맞는 일은 발생하지 않겠지만,
그 모호성 때문에 100%로 맞아 보이는 일은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뷔리당의 당나귀가 되어 고민에만 빠져 굶어 죽을 것인지,
주사위를 던져서라도 선택을 해야할 것인지...
생각해보니 상당히 어려운 문제네요.^^
다만, 이것 하나만은 기억해야할 듯싶습니다.
도저히 선택을 할 수 없어 주사위를 던지든 동전을 던지든간에
그 이후에 나타나는 일에 대한 책임을 주사위나 동전에 미루지 말자는겁니다.
최근 기사에서 그런 사람이 상당히 역겹다는 것을 느끼기에
그런 역겨운 사람은 되지 말아야겠다는 가이드라인을 잡고 싶습니다.
그러고보니 경험이 많다는 점, 생각이 많다는 점은
이러한 가이드 라인이 많아 중요도를 저울질 할 때
세밀한 부분까지 살펴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능력이 있는 것이지 그렇게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PS
이번에도 결론이 다른 길로 빠지고 말았습니다.OTL....
하지만 나름 재미있는 생각으로 마인드 맵을 그려보지 않았나 싶습니다.^^
뷔리당의 당나귀에 대해 아시는 분은 댓글 부탁드립니다.^^
- 글쓰기.. 어렵네요.^^ (12)2008/07/28
- 회사에서 함부로 새끼라 하지맙시다. (20)2008/07/27
- INTJ는 My Way (2)2008/07/20
- 건초를 앞에 두고도 굶어 죽은 당나귀 (8)2008/07/20
-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달라. (15)2008/07/16
- National Geographic이 소개하는 South Korea (14)2008/07/09
- '세계적'와 '미국적' (7)2008/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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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이성에 대한 비판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세계 내부 존재자들의 존재방식이 이성만을 통해 이루어진다면 변화가 없는, 말하자면 생성이 사라진 세계가 된다는 말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모든 인간이 완벽한 이성을 가졌다면 어떠한 '사건'도 일어나지 않겠죠. 사건의 생성이란 사건의 지평에서 튀어오르는 것이니까요.
아.. 그렇군요.
사람이 완벽한 이성을 가졌다면 그 둘 사이에서 고민하다 굶어 죽을 것인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기에 완벽한 이성을 가지지 않았다..인가요?^^;;
그리고 완벽한 이성을 가진다면 변화가 없다라....
하지만 변화는 언제나 존재하니 역시 아니겠네요.^^
역시 철학과 분은 다르십니다.ㅜㅜ
저는 동전이나 주사위에 자주 의지하는데 말이지요... 특히 짜장면이냐 짬뽕이냐 할 때 말이지요..^^
아.. 이미 깨달음을 얻으셔서 행동하시는군요.^^
과연 어느 것을 시킬지 고민하다 굶는것보다는 동전을 던지는 것이 확실하네요.^^
굶어죽느니 눈감고 고르고 말죠...[먼산]
그게 정답인 듯...
일단 먹고 살아야죠.^^
결국 현실에서는 불완전한 이성 때문에 생명체들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일까요 아니면 불완전한 조건(그러니까 완전히 똑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그런 의문이 생기는 군요.
그것도 생각외로 재미있는 의문이네요.
완벽한 이성이 없는건지 완벽한 동일체가 없는건지...
전자나 후자나 다 맞는 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