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던 동네에 있던 선정비

By | 2014/02/17

잠시 집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동네를 한바퀴 천천히 걸어다니던 중 하나 신기한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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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비석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사람들이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쇠사슬이 쳐져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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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옆에 설명이 적혀진 글이 있습니다.

동래부사 류심 선정비
조선 중기에 동래부사를 지낸 류심의 선정비이다. 류심의 본관은 전주인데 전창위 정량의 아들로 어머니는 선조의 딸, 정휘옹주이며 자는 정보이고 호는 도계이다.
중광문과에 급제하여 숭문원에 등용되고 서장관과 부사로 두 차례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경상도관찰사와 평안도관찰사를 거쳐 예조참판, 강화유수, 도승지를 역임하였다. 문장과 서예에 능하였는데 특히 송설체에 뛰어 났다.
류심은 1649년 11월에 동래부사로 부임하여 1651년 7월에 경상도 관찰사로 승차하였는데 부임 때 전생의 어머니를 만났다는 인도환생 전설의 주인공으로 지금 부산박물관 뜰에 있는 공의 만고불망비에 그 기록이 남아있다.
이곳은 옛날 작은 저수지가 있던 곳으로 공이 집무 중에 가끔 이곳에 와서 낚시를 하였는데 언제나 관기와 동행하였다. 마침 그 해 홍수가 져서 이 곳 저수지에 물이 넘쳤는데 동행하였던 관기가 발을 헛디뎌 저수지에 빠져 죽자 이곳에 무덤을 만들어 작은 비를 세웠고 수시로 이곳을 찾아 그의 넋을 위로했으며 공이 본도 관찰사로 승차한 후 인 효종2년 9월에 주민들이 이 선정비를 세워 전임 부사의 공덕을 기렸다.
2009년 05월

제가 어렸을 때 저 곳 근처에 살면서 자주 돌아다녔는데 저 비석을 살펴보지 못한 이유가 있었네요. 해당 표지판이 세워진 것이 2009년으로 최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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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비석과 설명판이 같이 있습니다. 하지만 잘 관리를 하지 않는지 녹이 상당히 슬어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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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바닥 역시 관리가 되지 않았는지 바위 그대로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선정비가 있다고 하니 관련글이 있는가 싶어 찾아보았습니다. 그러자 부산 지방 신문인 국제신문에 관련 이야기가 있네요.

옛날 동래읍 서문통에 남편을 일찍 여의고 아들에 의지하며 살던 홀어머니가 있었다. 이 아들은 인물이 잘생겼을 뿐만 아니라 네 살짜리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 영리했다.
당 시 동래부에는 새 부사가 부임할 때 행차(行次)가 아주 성대했다. 이 행차에는 동래 명기 중 가장 아름다운 팔선녀가 등장하고 대군의 위장병과 군졸, 갑옷을 입고 말을 탄 기병들이 부사를 호위했다. 부민들은 이날만은 대낮에도 모두 집을 비우고 거리에 나와 부사를 환영했다.
홀어머니와 그 아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부사 행렬을 눈여겨보고 있던 등에 업힌 아들이 갑자기 “엄마, 나도 어른이 되면 저렇게 할 수 있나요”라고 물었다. 어머니는 아무 대꾸를 하지 않고 우울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 엄마, 왜 말이 없어. 난 커서 어른이 되면 저렇게 될 테야”라며 힘주어 재차 말하는 것이 아닌가. 이에 어머니는 한숨을 내쉰 후 “얘야, 너는 어른이 되어도 저렇게 할 수 없단다. 우리 같은 상놈들에게 저런 벼슬은 꿈에도 할 수 없는 거야”라고 힘없이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아들은 그날부터 밥을 먹지 않고 말도 잘 하질 않더니, 며칠 뒤 이름 모를 병으로 그만 죽고 말았다. 어머니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밤과 낮을 이어 울음으로 세월을 보낼 뿐이었다.
그 러던 어느 날 꿈속에서 죽은 아들을 만났다. 꿈속에서 아들은 “어머니 울지 마세요. 저는 한양에서 재상을 지낸 류씨 가문에 태어나 잘 살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상놈이란 소릴 듣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벼슬도 할 수 있게 됐어요. 어머니 걱정 마세요”라고 말한 후 사라졌다. 세월이 흘러 노파의 눈물도 차츰 말랐다. 숨 가쁜 하루살이에 지친 그녀는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으나 아들에 대한 생각은 여전히 지워지지 않았다. 해서, 아들의 제삿날은 거르지 않고 반드시 상을 차려놓고 서럽게 울었다.
재상 가의 가문에 다시 태어난 아들의 이름은 류심(1608~1667). 그는 해마다 생일이 되면 꼭 꿈속에서 전생의 집이 있던 동래를 찾아 제사 음식을 얻어먹고 돌아왔다. 달이 가고 해가 바뀌면서 어느덧 어른이 되어 벼슬길에 오르게 된 류심은 마침 동래부사로 부임(재임 1649~1651)하게 되었다.
난생 처음으로 행차하는 황산도(밀양~동래) 길이건만 이상하게도 생일 꿈속에서 오가던 길과 흡사함을 느꼈다. 부임한 지 얼마 안 돼 류심은 한밤중에 제삿밥을 얻어 먹던 집을 찾기 위해 통인(通引·동헌의 부사에 딸린 잔심부름을 하던 사람)과 함께 나섰다. 좁은 골목길을 걸어가다가 그는 해마다 한 차례씩 꿈속에서 찾아갔던 집과 똑같은 집을 발견하고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조심스럽게 집 안으로 들어가자 마당에서는 백발의 노파가 제사상을 차려놓고 울고 있었다. 부사는 정중하게 인사를 올리고 노파에게 물었다. “어찌하여 제사상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거요?” 노파는 계속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몸은 남편 없이 아들에 의지하며 살았사오나 그 어린 것이 단명하여 저승으로 갔사온데 오늘이 바로 그 입제일(入祭日)이옵니다.”
아들이 죽은 날을 듣고 보니 이상하게도 그날이 류 부사의 생일과 같은 날이었다. 잠시 후 노파는 다시 말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죽은 뒤 꿈속에 나타나 한양의 류씨 가문에 태어났다고 하더군요.” 류 부사는 마음속으로 가만히 “어머님…” 하고 불렀다. 이 노파가 바로 전생의 어머니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후 류심은 경상도 관찰사로 승진하게 되자 곡식, 제기와 함께 농토를 마련해 줌으로써 전생의 어머니에게 은혜의 보답으로 배려했다고 한다.
가마골향토역사연구원장·국사편찬위원회 부산사료조사위원

출처: 주영택이 발로 찾은 부산의 전설 보따리 <46> 전생의 어머니를 만난 부사 류심

신기한 얘기네요.

 

이렇게 국사책에서만 접하던 선정비가 살던 동네에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다만, 선정비 옆의 설명문을 보면서 사실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국사 시간에 배우길 선정비는 처음에 정말로 그 지방을 잘 다스려준 사람을 기리는 비석이었습니다. 즉, 잘 다스려준 관리가 떠나고 나서 그 관리를 기리는 비석이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점차 변질되어 너도나도 선정비를 세우기 시작하였고, 그러하여 선정비라는 것이 빛을 바랬다는 얘기였습니다. 특히 아직 떠나지 않았음에도 그런 비석을 세우도록 하였다는 점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해당 비석은 그 부사가 떠나고 나서 세워진 것입니다. 하지만 정확하게는 떠났다기 보다는 해당 지역의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갔다는 점에서 살아있는 혹은 더 강력한 권력을 기리는 비석인 것입니다. 더하여 비석을 세운 장소는 그 사람이 온정을 베풀었다기 보다는 관기(…)가 빠져 죽은 것을 기리는 곳이었다니 이건 좀 아닌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공무 중이 아닌 상황에서 일어난 일이기에 선정비라고 하기에는 이상하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그 때의 도덕적 기준과 지금의 도덕적 기준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점을 고려해야함은 사실입니다. 따라서 선정비에 올려진 사람에 대한 평가를 한다기 보다는 국사 책에서만 보던 것이 동네에 있었다는 점과 그 때 배웠던 것이 떠올랐다는 점, 이를 기록하고자 이 글을 적습니다.

 

PS

선정비라는 태그를 적으려고 하니 이미 예전에 관련글을 적었네요.

목민심서 – 목민관이라면..

위에 얘기했던 선정비의 안 좋은 예를 해당 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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