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625 가덕도 – 외양포

By | 2020/02/25

이 날은 다음 날이 어머니 생신이라서 부산집에 갔습니다. 부모님께서 근처 여행을 가자고 하셔서 집을 나섰고 통영으로 향하였습니다. 거기로 가던 중 가덕도를 들렀고 가덕도 끝지점에 있는 곳까지 가보았습니다. 그 곳의 이름은 외양포항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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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보니 이렇게 무언가 군사 시설로 보이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 번 가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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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니 이렇게 유적지가 보였습니다. 확실히 군사 시설이었던 것 같은 그런 장소였습니다.

어떤 곳인지 살펴보니 옛날 일제 시대 때 일본군이 구축한 포대사령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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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는 이렇게 나름 정비를 하여 볼 수 있었으나 설명이 그리 많지 않아 잘 모르겠더군요. 그 점은 아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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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사령부발상지지라는 이름의 비석이 있었는데 무엇인지 모르겠더군요. 찾아보니 ‘요새사령부건립비’라고 합니다. 여하튼 이렇게 여기에 일본군 진지가 있었다는 것을 보게 되니 일제 시대가 정말 그렇게 머나먼 시대가 아니었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더군요.

부산에 100년 전 마을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정확히는 113년 전 조성된 마을이다. 가덕도 외양포 마을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100년 전 마을’인 외양포(外洋浦). 외양포는 가덕도 남쪽 끝단의 조용한 갯마을이다. 마을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빨강, 파랑, 초록색 지붕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있는 전형적인 어촌마을의 한적함이 묻어난다.

외양포 마을의 원래의 이름은 ‘외항포(外項浦)’다. 대항의 바깥쪽 목덜미(項) 형태의 포구라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은 마을 전체가 100백여 년 전, 일본군 ‘진해만 요새 사령부’가 주둔해 있던 병영이었다. 현재의 외양포 마을이 원래는 일본군 병영이었다는 이야기다.

1904년 일본군은 러일전쟁을 일으킨 후 대한해협의 군사거점을 확보하기 위해 외양포 마을 64가구 주민을 쫒아냈다. 이곳에 러시아 발틱함대와의 격전을 대비한 포대사령부를 건설·주둔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외양포는 대항마을보다 호구가 많았던 마을. 양천 허씨 집성촌이었던 마을주민들이 떠나기를 완강히 거부하자, 그들의 집과 세간을 불태우고 총칼을 앞세워 강제 이주시켜버렸다.

대륙침략의 군사요충지인 외양포에 일본군 포진지 요새가 구축되고 군막사와 무기창고, 우물과 수리시설 등이 완료되면서 1905년 외양포는 ‘진해만 요새 사령부’의 주둔지로 대륙침략의 전초기지가 된다.

일본 패망 이후 다른 마을로 떠났던 외양포 사람들이 돌아와 일본군 시설을 개조해 지금껏 생활하고 있다. 때문에 이곳은 아직도 ‘일제강점기’가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현재 이 마을은 해군의 ‘군사지역’으로 개발이 제한돼 있어 마을 뒤 언덕에는 그 시절 ‘일본군 포진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고, 일본군 막사건물들이 아직도 원형 그대로 남아 주민들의 거처로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도시철도 1호선 하단역에서 대항까지 노선버스가 운행을 하고 있으며, 기존의 대항에서 외양포로 들어가는 좁은 언덕길을 대신하는 새 도로가 들어서 한결 편하게 마을진입이 가능하다.

일본군 병영·포진지 그대로 남아있는 외양포 억압·수탈 세월 생생히 전하는 마을

부산시에서 이렇게 여기에 대해 정보를 남겨두었습니다. 그 덕분에 이 곳이 어떤 곳인지 조금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런 설명을 좀 더 현장에서 볼 수 있었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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