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서 – 목민관이라면..

By | 2006/08/12

목민심서. 다시 읽어도 힘든 책입니다.

어렵기도 어렵지만,

문제는 예전의 제도에 대한 얘기가 있어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것들이라 이해가 힘듭니다.

필요도 없는 듯 해서 왠만한 것은 그냥 넘겼습니다.

하지만 목민관이라면 최소 한 번 정도는 읽고

자신을 다듬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백성을 다스리는 자리에 있는 사람의 도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애민육조(愛民六條)

즉, 양로(養老), 자유(慈幼), 진궁(振窮), 애상(哀喪), 관질(寬疾), 구재(救災)

이 여섯 가지는 그 방법이 다르다 할지라도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제 생각이지만, 봉공이나 호전, 병전은 그리 와닿지 않지만,

나머지 편은 꼼꼼히 살펴 가져야 할 정신을 챙겨야겠습니다.

 

전 공무원이 아니고 될 마음도 없지만,

나라의 주인은 바로 저이기에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같은 마음으로 여러분도 나라의 주인이니

일을 하는 공무원이 제대로 하는지 알아야겠죠?^^

 

마지막으로 두 가지만 이 글에 남깁니다.

1. 귀장(歸裝)

  • 모름지기 목민관이 체임되어 돌아갈 때의 행색은 해어진 수레와 여윈 말에다 행장에는 별다르게 지닌 것이 없이 오직 맑은 바람만이 사람을 엄습하는 초연함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목민관은 염결의 이도를 지켜서 털끝만큼도 백성을 침해하거나 국고를 축내는 일이 없어야 한다.
  • 허자는 가선령이 되었는데도 극히 염결하고 공정하였다. 체임되어 돌아갈 때는 수레를 탈 돈이 없어서 마침내 나귀 한 마리를 빌려서 타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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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유애(遺愛)

  • 이상황이 충청도 암행어사가 되었을 때의 일이다. 새벽에 괴산군에 다다랐는데 고을에 5리쯤 못미처 하늘 빛이 아직도 희미한 속에 멀리 미나리밭 가운데에 한 백성이 소매에서 나뭇조각을 꺼내어 진흙 속에 거꾸로 꽂았다가 길 옆에 바로 세우고, 또 앞으로 수십 보를 가더니 다시 소매 속에서 나뭇조각을 꺼내어 진흙칠을 하여 세우는 것을 보았다. 이렇게 하기를 다섯 번이나 하였다. 어사가 묻기를, “그것이 무슨 물건인가.”라고 하니, 대답하기를, “이것은 선정비인데 나그네는 모를 것이오.”라고 하였다. 어사가 다시 묻기를, “왜 진흙칠을 하는 것이오?”라고 하니 대답하기를, “암행어사가 사방으로 돌아다니므로 이방이 나를 불러 이 비 10개를 주고 동쪽 길에 다섯 개를 세우고 서쪽 길에 다섯 개를 세우라고 하였는데, 눈먼 어사가 이것을 진짜 선정비로 알까 두려워서 진흙칠을 하여 세우는 것이오.”라고 하였다. 어사가 그 길로 들어가서 일을 조사하여 먼저 진흙비의 일을 논죄하고 봉고파직하였다.

관련 기사는 생략하겠습니다.

 

참조

3 thoughts on “목민심서 – 목민관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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