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다가 한 부분에서 멈추었습니다.
- 어머님을 뵙고 난 어젯밤에는 터무늬없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만약 제가 그 때 죽어서 망우리 어느 묘지에 묻혀 있다면, 10년 세월이 흐른 지금쯤에는 어머니의 아픈 마음도 빛이 바래고 모가 닳아서 지금처럼 수시로 마음 아프시지는 않고 긴 한숨 한 번쯤으로 달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을지 모를 일입니다만, 그러나 어제처럼 어머님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어머님께서 손수 만드신 점심을 먹는 모습을 보실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P 150 – 어머님 앞에서는
제가 여기서 멈춘 이유는
전에 자살을 하려고 하였을 때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3년 전, 수능 점수가 생각외로 낮게 나오자
그야말로 큰 충격에 한동안 고민했습니다.
제가 자주 가는 커뮤니티에도 언급했지만
대학도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그냥 지원했고
수능 치고 나서는 정신적인 방황을 했습니다.
그렇게 방황을 하고 있을 때 떠올랐던 생각이
위와 비슷하더군요.
‘지금 내가 죽으면 부모님은 잠깐 슬퍼하시고
종종 슬퍼하시겠지.
그러나 내가 살아있다면 못난 자식을 계속 바라보기에
계속 괴로워하시겠지.’
그렇게 얼마간을 생각하다가 그만두었습니다.
‘살아있다면 언제라도 일어설 수 있다.
지금 내가 낙담하더라도
살아있다면 살아있다면
다시 재기할 수 있을 것이다.
죽으면 모든게 끝이다.
괴로움도 희망도..
그렇기에 살아야 한다.
살아서 다시 열심히 하자!’
무엇이 저를 그렇게 이끌었는지는 모르겠네요.
아무튼 그 때 결심을 하였을 때
합격/불합격 얘기가 나오더군요.
상향지원한 곳은 불합격,
안정권은 합격.
‘그래. 먼저 합격한 학교를 가서 거기서 최고가 되는거다.’
그렇게 결심하고 나서 아침에 영어학원을 가고,
대학 입학하고나서 저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리고 이를 대학 입학할 때 더욱 확고하게 했습니다.
입학식에 가보니 어떤 여자분이 우리학교 수석입학이라고 하더군요.
그 분의 나이는 저보다 10살이 많으시더군요.
‘그래. 저 사람도 살아서 저렇게 올라가있다.
난 지금 이렇지만, 노력해서 졸업 때 저렇게 되어 있겠다.’
그 분이 지금 생각해보면 저에게 많은 도움을 주신 듯 싶네요.
지금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립니다.
신영복 전 교수님은 하룻만에 그 방황을 끝내셨네요.
전 그 방황이 조금 길었네요.
아직 멀었습니다.^^
또, 졸업할 때 정상에 설 수 있을지 불안하네요.
복학하기까지 1년 반, 복학하고나서 3년.
아직 많은 시간이 있으니 충분하리라 믿습니다.
그 때까지 살아만 있다면……
후에 어떤 괴로움 때문에 똑같은 착각에 빠질 수도 있겠네요.
그 때 이 글이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이 글을 마칩니다.
길은 어디에든지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저도 점수 별로에요 -_-;;).
방황은 누구나 하게 마련이죠
그건그렇고 좀 충격이군요; 그런 일이 있었다니 ;;
/AYIN/
맞아요.
그런데 그게 그 일이 닥쳤을 때 바로 생각을 못한다는게 아쉽더군요.
이 글도 중요한 것을 되살리고자 적어봤어요.^^
/방랑객/
그런가봐요.^^
근데 충격까지..;;^^
저도 비슷한 생각에 혼자 방에서 울던 때가 있었어요.
그떄의 기록들이 집 어딘가의 일기로 남아있었는데 고향가서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니 참 어둡더군요. 근데 그때의 글들과 기록들이 지금도 거부하고 싶지 않은 내 모습으로 다가와서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은..그런 나였습니다.
/주냉이/
지금의 약한 저를 미래의 내가 감싸안아줄 정도로 커져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런 글을 남기기도 하죠.^^
오래간만이예요^^ 시험끝났습니다. 자살이라… 생각해보지 않은 적은 아니지만, ‘죽으면 나만 손해지’라는 생각에 금방 떨쳐냈습니다. 물론 살아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
/케키야상/
정말 오랜만이네요.^^
‘죽으면 나만 손해다.’ 그것도 자살을 막는 좋은 생각인 듯 싶어요.^^
‘살아있어서 다행이다.’은 더욱 좋은듯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