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평전

By | 2006/12/03

저는 공대생이지만,

공돌이는 되고 싶지 않아

인문사회학에 관심을 가지고자 했지만,

제 인간관계가 워낙에 좁아

문과생 중 아는 사람이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던 공부 잘하던 친구뿐이라

(현재 부산대 법학생)

그 친구를 많이 귀찮게 했습니다.

귀찮게 한 것 중 하나가 책 추천이었습니다.

작년인 2005년 3월 1일로 기억합니다.

그 때도 그 친구를 귀찮게 했고,

그러던 중 날라온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전태일 평전’

전 해당 책을 추천받고서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전태일이라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라며

분신을 한 사람입니다.

즉, ‘전태일 = 노동운동을 한 사람’이라 알고 있었죠.

 

그러나 전 노동운동에 대해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노동 운동을 보여주는 언론은 폭력적인 장면을 보여주었고,

데모를 직접 하였던 학원 선생님들한테서 듣는

데모 얘기는 한심함 그 자체였습니다.

목적도 모른채 남이 하기에 했다는 정도였고,

어떨 땐 ‘경찰 골탕먹이기’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거기에 각 노조들의 비리 사건을 접하자

그러한 생각이 더욱 심해졌습니다.

그리고 저 책을 추천받았을 때

예전에 우리학교에서 일어난 사건을 접하였습니다.

일명 ‘00년 사태‘라고 합니다.

 

그래서 해당 책을 읽는 것을 보류했습니다.

읽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내 상태로 읽었다가

격한 마음에 천방지축으로 돌아다닐 수도 있다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대학생이 읽어야 할 책 100선‘에도

해당 책이 언급되었고,

이제 한 쪽만이 아닌 다른 쪽도 봐야한다는 생각에

책을 잡았습니다.

 

전태일 평전.

이 책을 읽고나서

‘왜 그는 분신을 했는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말의 의미는?’에

100% 원하는 답을 할 수 없겠지만,

이해를 할 수 있었습니다.

 

책을 읽다가 생각난 것들이 있어 여기에 적습니다.

 

  • 생존의 권리를 요구하는 모든 밑바닥 인생들의 집단운동이 위험시되고, 그중에서도 특히 노동운동은 마치 공산주의 운동이나 마찬가지인 듯이 오인받아 철저한 제약 아래 놓이게 된 것이다.

제가 생각한 것이 오인이였다는 것을

이 책을 읽을 때 이해못했으나

다 읽고 나서는 어느 정도 이해는 갔습니다.

하지만 이건 그 때의 상황이지만,

지금 현재 그 둘의 차이를 알 수 없어 답답하네요.

 

  • 우리 사회에서 한 인간이 배우지 못한다는 사실이 뜻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끝없는 가난과 질병, 중노동과 멸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는 것을 뜻하는 것이며, 평생을 통하여 아무런 희망도 가질 수 없는 밑바닥 인생으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제 블로그에 찾아오시는 분 중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

해당 글이 나오게 하는 검색어를 많이 검색하시더군요.

그런데 제 생각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듯 싶네요.

대신 저 말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집에 돈이 많다면 배우지 못해도 밑바닥 인생은 아니겠지만,

멸시의 굴레는 못 벗어나겠죠.

 

  • 적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하나의 절대적인 진리, 당연한 삶의 요결, 전혀 의심할 여지 없는 공리처럼 되어 있다.
  • 군대가 사람 만드는 곳이다. 군대에 갔다오면 사회에 적응할 줄 아는 인간이 된다고 하는 우리가 수없이 듣는 이 말이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 자신이 얼마나 무력하고 얼마나 왜소한 존재인가를 뼛속 깊이 깨달아 겸손(?)해지는 인간, 강자의 지배에 도전하거나 저항하거나 이의를 내세운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달걀로 바윗덩어리는 치는’ 일인가를 철저히 터득하여 온순해진 지각 있는(?) 인간, 그러한 인간이 군대로부터 만들어져 나온다는 것을 뜻한다. 바로 이것이 ‘적응할 줄 아는 인간’의 정체인 것이다.
  • 그 예로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이다.

일단 저는 그런 인간이 안 되겠군요.^^

하지만 될지도 모르지요.

꼭 군대만이 그런 사람을 만드는 것은 아니지요.

그래서 이 말을 잊지 않고 용기를 기르려고 합니다.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지 마라?

 

  • 모범업체 설립의 꿈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제대로 지키면서

이익을 내는 모범업체를 만들기를 원했습니다.

저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세금도 정당히 내고 법도 지키면서

이익을 많이 내서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되는 업체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경험이 없지만 이리저리 계획을 짜보았습니다.

그런데 다시 살펴보니 저는 크나큰 착각을 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람을 기계로 보고 말았다.’

‘이러저러한 제도나 장치를 만들면

그들은 제대로 움직일것이다라고 생각하다니

이건 마치 기계처럼 움직이기를 바라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경험이 부족하기에 그러하다 생각하고

해당 계획을 집어치웠습니다.

그런데 전태일의 계획에도 그러한 감이 보이는 듯 싶어

조금은 아쉬웠습니다.

 

  • 엘리자베스 테일러라는 외국 여자가 리처트 버튼이라는 외국 남자와 몇 번 결혼하고 몇 번 이혼했는가를 사람들은 안다. 신문에 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화시장의 열세 살짜리 여공들이 하루 몇 시간을 노동해야 하는가를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신문에 안 나기 때문이다.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라는 외국 여자가 승마를 하다가 발가락을 삐었다 한다면 사람들은 늦어도 바로 다음날까지는 그 사실을 알게 된다. ‘신속 정확한’ 신문보도 덕분이다. 그러나 강원도 어떤 탄광에서 갱도가 무너져 광부들이 매몰되어 죽었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그 사실을 반드시 알지는 못한다. 신문에 나지 않거나, 나더라도 거의 눈에 띄지 않을 만한 구석자리에 작은 기사로 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 사회의 신문인 것이다.

이는 그 때의 오늘날이나 지금의 오늘날이나 같은 듯 싶습니다.^^

그래서 현재 블로그라는 것을 좋게 보고 있습니다.

제 블로그처럼 한심한 주저리나 나오는 곳이 있지만,

분명 개인 미디어이기에 사실을 전파하는 것이

조금 쉬워지지 않아나 싶습니다.

하지만 거짓 역시 퍼지기 쉬워

양날의 칼임은 맞는 듯 싶습니다.

 

  • 데모라는 것은 ‘보여준다’, ‘과시한다’를 뜻하는 영어 ‘데몬스트레이션(demonstration)’의 준말이다. 이것을 우리말로는 시위라고 번역하는데, 이 시위라는 말이 오히려 데모의 본 뜻을 잘 나타내는 것이다. 즉, 위세, 위력을 보여줌으로써 겁을 준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떨게 한다. 그리함으로써 이쪽의 요구조건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도록 강박한다는 것이 데모의 본질인 것이다. 그러므로 데모라는 것은 진정이니 호소니 청원이니 건의니 하는 따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 엉터리 비폭력주의자들이 무엇이라고 말하건 간에 데모란 상대편의 양심이나 자비심이나 동정심을 구걸하는 행위가 아니라, 이쪽 편의 실력(그것이 선거에서의 투표권이든, 적나라한 폭력이든, 사회여론에 대한 영향력이든 간에)을 배경으로 한 상대편에 대한 공갈인 것이다. “제발 이렇게 해주십시오”하는 것이 데모가 아니라, “이런데도 네가 말을 안 듣고 배기겠느냐?”라고 윽박지르는 것이 데모인 것이다.
  • 그러므로 ‘데모’란 상대편에 대한 대항하는 자의 당당한 선전포고이며, 요구조건이 관철될 때까지 끊임없이, 갈수록 더욱 격렬하게, 위협적인 도전을 감행하겠다는 경고인 것이다.

데모란 무엇인지 잘 적은 글인 듯 싶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통해서도 데모의 안 좋은 점이 마구 나타나는군요.

첫 째로 제가 ‘엉터리 비폭력주의자’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 쪽 말을 전혀 듣지 않겠다는 말이 보이는군요.

‘엉터리’라 말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둘 째로 윽박은 싫어하는 것이 아니었나요?

기업에게 정부에게 받은 윽박을 윽박으로 상대한다는 것입니까?

‘윽박이 싫다. 그래서 나도 윽박지른다?’

‘윽박이 싫다. 그래서 너도 윽박이 싫은 것임을 알아봐라?’

역시 제가 ‘엉터리 비폭력주의자’라서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데모는 분명 윽박입니다.

윽박이기에 처음에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책을 보면 전태일은 데모 전에 많은 것을 해왔습니다.

그러다 마지막에 데모를 한 것입니다.

그런 과정을 일반인이 알 수 없기에

데모를 이해못한다는 것.

아마 하시는 분들이 잘 아시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불과 몇 십년 전에 저러한 시다가 있었기에

지금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다는 것을

또, 그런 사람을 구하기 위해

노동운동이 있어왔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이번에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좋은 책을 소개해준

친구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며

이 책을 늦게 읽은 저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참조

엠파스 사전(http://alldic.empas.com/)

성대사랑(http://www.skkulove.com/)

10 thoughts on “전태일 평전

  1. 루돌프

    영화에서 전태일씨 역을 맡았던분.. (이름이 뭐였지 <( @ 0 @)> )
    마지막 대사가 기억에…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였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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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방랑객

    단순히 노동운동을 한 사람으로만 평가받아야 할게 아니라 ‘그 시대에 노동운동을 한’ 사람으로 평가받아야만 하지 않을까 하네요 .. 근데 솔직히 요즘 들어서는 몇몇 강경 노동운동가들에 의해 이미지가 좀 변질된것 같은 감이 없지 않나 싶어서 좋질 않군요 ..

    Reply
  3. NoSyu

    /방랑객/
    그 시대에 노동운동을 하였다..
    예.. 맞네요.^^
    본래의 이미지가 변질되었다는게 참 아쉽죠.

    Reply
  4. 時水

    그러나 지금의 노동운동은 단순한 이익집단들의 밥그릇 챙기기에 지나지 않는게 현실이죠.
    현재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 중 전태일씨와 같은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몇명이나 될까요. 시간이 흐르면서 노동운동의 방향 또한 변질되는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Reply
  5. ellouin

    지금의 노동운동이 변질되었다는 부분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단지 변질된 것들을 보도로 알았고 그게 전부로 인식한다."는 것은 일견 무책임한 태도일 수 있습니다. 전태일 평전을 읽어야 전태일에 대해 알 수 있듯이, 길바닥에 앉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균형있게 접해봐야 그들이 누구인지 어떻게 해서 그 곳으로 나올 수 있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신문에 나온 건강정보 몇가지로 의사노릇하려는 사람은 없기 마련입니다. 명확하지 않은 이미지로 약자를 쉽게 재단하는 것은 우려할 만한 일일수 있습니다.

    Reply
  6. NoSyu

    /時水/
    반갑습니다.
    그러하군요.
    이익집단의 밥그릇 챙기기 모습을 언론을 통해 접한다면 정말 변질이 된 듯도 싶습니다.

    Reply
  7. NoSyu

    /ellouin/
    반갑습니다.
    ellouin님은 동의하지 않으시는군요.
    사실 저 역시 전태일평전을 읽기 전 전태일이라는 사람은
    분신을 한 것외에는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그의 철학이나 앞서 행동했던 것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어쩌면 지금의 노동운동도 그와 비슷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앞뒤 다 짤라내고 어떤 특이한 것만 보여주는 글에 의해
    그런 행동이 나오게 된 원인이나 그 행동 이전에 보여줬던 행동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 모두 의사가 될 수없습니다.
    건강정보 몇 가지로 의사노릇을 할 수 없지만,
    그 정보를 토대로 의사를 찾기 이전에 스스로 판단을 할 수 있지요.
    마찬가지로 우리 모두가 그들 전부를 다 알고 보살펴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행동에 대해 취재하는 사람이 그간 있었던 일에 대해 밝혀내고 적어서
    읽는 우리가 거기에 동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의문점이나 더 궁금한 것이 있다면 직접 찾는 전문가가 되어야할 듯…

    하지만 신문사 스스로가 기사를 사실이 아닌 글이라 밝혔듯이
    기자의 의견이 들어가기에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Reply
  8. ellouin

    저도 뭐 제대로 찾아다니며 알아보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정보의 획득에 딱히 노력을 기울인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단지 하는 것이 있다면,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매일경제,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이렇게 어느정도 알려진 언론의 기사를 비교평가하는 정도입니다. 각 신문사마다의 입장이 다르고 가지고 있는 정보의 깊이가 다르니까요. 그러다보면, 누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고, 누가 무엇을 숨기고 싶어하는지에 대해 생각할 여지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Reply
  9. NoSyu

    /ellouin/
    저는 각 신문사 홈페이지를 찾아가 읽지는 않습니다만,
    네이버, 엠파스, 다음, 구글, 네이트처럼 포탈에서 관련 기사를 검색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한계가 있더라구요.^^OTL…
    ellouin님처럼 각 신문사 홈페이지를 찾아가 읽어야할 듯…^^
    좋은 덧글 고맙습니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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