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아버지가 일찍 죽어 효를 강조하게 되었다?

By | 2006/12/11

오늘 아침에 화장실에서 큰 일을 보면서

좋은생각 12월호를 보았습니다.

그 중 18일짜 오늘의 만남에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 육십 대에 아들을 얻은 공자의 아버지는 그가 세 살 때 세상을 떠났다. 공자는 자라서 자신이 닮고 싶은 아버지상을 찾아다녔고, 웃어른과 성현은 우리가 따라야 할 아버지상이라고 외쳤다. 그가 평생 효를 중시한 것도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투영된 아들의 삶 – 이하림 기자

해당 글을 읽자마자 든 생각은

‘어떻게 공자가 그러한 이유로 효를 강조하게 되었다는 말인가?’

라며 화도 같이 났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맞을 수도 있더군요.

분명 공자의 아버지는 공자가 어릴 때 죽었고,

따라서 그리움에 그렇게 할 수도 있겠죠.

 

거기까지 생각해보니 부끄럽더군요.

전에 제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공격에 대해

화를 내지 말자라는 글을 적었습니다.

내 주변에 사람이 없는 이유

그런데도 10일이 지난 오늘

같은 잘못을 또 하고 있으니

발전이 없네요.;;

 

노암 촘스키는 인물을 신격화하는 것에 대해서

조심할 것을 말했습니다.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전 아마 ‘공자’를 신격화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공자의 가르침은 어떤 환경에서 온 것이 아닌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나타났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 역시 분명 사람이기에

환경을 무시할 수 없겠죠.

 

마찬가지로 종교라는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기에

그것을 공격한다는 것은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공격하는 것과 같은 것이죠.

그래서 종교 토론이 상당히 힘든 이유인 듯 싶습니다.

 

신격화 즉, 한 인물이 완벽완전한 신이 되어버리면

단점이 없다고 믿게 될 것이고,

그렇다면 비판을 통해 받을 것을 못 받게 되니

절대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대신 90% 신격화를 통해

존경하는 인물 즉, 자신이 바라는 이상향을 만들어

그 곳을 향해 노력하는 것이 좋을 듯 싶습니다.

 

또 제가 직접 당해보니(?) 약간의 말장난으로

싸움을 막을 수 있을 듯 싶습니다.

마지막에 ‘그리움 때문이었다.’가 아닌

‘그리움 때문이었을것이다.’라는 말장난말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의견을 확실히 내비쳐야 하는 글이기 때문에

이런 말장난은 안 좋아보이기도 하는군요.

100% 완벽한 정답이 없는 듯 하여 모호하네요.^^

9 thoughts on “공자는 아버지가 일찍 죽어 효를 강조하게 되었다?

  1. 비탈길

    그래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공격에는 어쩔 수 없는 감정이 생기는 것이 사람인 것 같아요.;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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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NoSyu

    /비탈길/
    반갑습니다.^^
    그 감정이 나타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자제하는 것도 사람인 듯 싶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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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루돌프

    킬킬킬.. -ㄷ- 사람이 원래 그런겁니다.
    머리로는 이해해도 마음이 받아주지를 않는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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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방랑객

    말씀하신대로..
    100% 정답은 없는게죠a .. 단순한것 같으면서도 사실 가장 정확한것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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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NoSyu

    최근 ‘나는 꼼수다’라는 방송에서 ‘가카는 절대 그럴 분이 아니십니다’라는 멘트가 나온다고 합니다.
    그것을 보니 이 글이 생각났네요.
    해당 방송에서는 자기 방어 혹은 비꼼의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여 이 글의 목적과 다른 듯싶습니다.
    다만, 그런 용도가 아닌 실제 ‘가카는 절대 그럴 분이 아니다.’라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정말 ‘신격화’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그런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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